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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준 렌즈(Normal Lens)는 그것으로 찍어 인화한 사진이 표준적인 감상 환경에서 보기에 "자연스러운" 렌즈다. 정지화상을 찍는 사진술에서는 촬상면의 대각선 길이와 같은 초점거리의 렌즈를 표준 렌즈로 삼는다[각주:1].


 135포맷의 촬상면 크기는 36x24mm이고, 그 대각선 길이는 약 43.26661mm이다. 편의상 이 길이를 Sf로 표기하겠다. 135포맷 카메라에 초점거리가 Sf인 렌즈를 장착했을 때 그 화각은 약 53.13010°이다. 편의상 이 각도를 Sa로 표기하겠다.


 첫 문단의 정의를 따른다면 135포맷의 표준 렌즈는 초점거리가 Sf에 근접한 정수값인 43mm인 렌즈여야 한다[각주:2]. 70년대까지만 해도 50mm가 아닌 초점거리의 렌즈를 표준렌즈처럼 쓰는 카메라들이 제법 흔했다. 미놀타 하이매틱 7s를 포함한 꽤 많은 렌즈 붙박이 RF카메라들이 40mm 렌즈를 채택했고, 장농에서 많이 발굴된다는 야시카 일렉트로니카 35 GSN은 45mm 렌즈를 채택했다. 이 렌즈들의 화각은 50mm의 그것보다 Sa에 가깝다[각주:3].


 캐논 크롭바디 DSLR에 장착한 40mm f/2.8이 애매하게 좁아 답답하다지만[각주:4], 그 애매한 답답함은 135포맷에서 40mm렌즈를 쓰다 50mm렌즈를 쓸 때의 애매하게 좁은 느낌과 비슷하다[각주:5].


 50mm는 꽤 임의적인 초점 거리이다. 스탑 단위로 따져볼 때 50mm는 Sf보다 1/5스탑 긴 렌즈로 볼 수 있는데[각주:6], 이 차이는 Sf의 근사값으로 설정했다 보기엔 좀 떨어져 있고, Sf와 다른 또 하나의 값으로 설정했다 보기엔 많이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mm가 135포맷의 표준 렌즈로 군림하게 된 이유는 숫자가 100의 절반으로 깔끔하게 떨어지고, 라이카의 RF[각주:7]와 캐논, 니콘, 펜탁스, 미놀타의 SLR이 줄기차게 50mm 렌즈를 생산해서 뿌렸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이 한 번 그렇게 흘러가고 50mm 렌즈 설계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하면, 50mm가 아니면서 Sf에 가까운 다른 렌즈를 출시하기 힘들어진다[각주:8].


 초점거리, 또는 135포맷 환산 초점거리가 Sf에 가까운 렌즈가 늘어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35포맷보다 작은 촬상면을 채택한 DSLR이 보급되면서 "50mm"라는 숫자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져서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그래서 APS-C나 그보다 작은 촬상면에 맞게 설계한 전용 렌즈를 출시할 때 환산 50mm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30mm 렌즈는 APS-C 바디에 장착하면 135포맷 환산 45mm에 해당한다[각주:9]. 환산 50mm를 맞추려면 33mm이 적합하겠지만, 30mm쪽이 숫자가 깔끔하게 떨어져서[각주:10] 30mm로 갔을 가능성이 높다. 35mm는 135포맷에 이미 깔린 렌즈가 있어서 가지 않았을 것이며, 환산 초점거리가 50mm보다 좀 더 길어서 화각이 좁아지는 문제가 있다[각주:11].


 APS-C 센서를 채택한 DSLR을 굴릴 때는 35mm f/2 렌즈를 장착하는 것이 28mm f/2.8 렌즈를 장착하는 것보다 얕은 심도를 얻기에 좋다. 그리고 35/2렌즈는 28/2.8렌즈보다 조금 더 가볍고 값싸고 구하기 쉽다. 만약 28/2렌즈가 35/2렌즈만큼 흔하고 가볍고 값쌌더라면 사용자는 두 렌즈를 같은 선에 올려놓고 고민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각주:12]. 이런 식으로 표준 렌즈는 환산 50mm에 근접한 초점거리에서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환산 40mm나 45mm에 가까운 렌즈들이 많이 풀렸고, 나는 이 렌즈들을 내버려두고 "50mm 표준설"을 굳이 따라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50mm는 40mm나 45mm만큼이나 임의적인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표준 렌즈는 환산 몇 mm여야 하는가"와 같은 의문에 대한 최선의 답은 "43mm에 근접한 값"이지, "50mm"가 아니다.




 주석


  1. 인터넷 검색에서 흔히 검출되는 내용이며, 위키피디아 영문판에서 확인하였다. "In photography and cinematography a normal lens is a lens that reproduces a field of view that generally looks "natural" to a human observer under normal viewing conditions, (후략)" [본문으로]
  2. 135포맷 카메라에 장착한 43mm 렌즈의 화각은 약 53.4도이다. [본문으로]
  3. 135포맷에 장착한 50mm 렌즈의 화각은 약 46.8도로 Sa보다 약 6.6도 좁다(약 88.1%). 45mm 렌즈의 화각은 Sa보다 약 2.06도 좁으며(약 96.7%), 40mm 렌즈의 화각은 Sa보다 약 3.7도 넓다(약 106.9%). [본문으로]
  4. 135포맷 환산화각 약 37.4도. 50mm 렌즈 화각의 약 79.8%이다. [본문으로]
  5. 50mm 렌즈 화각은 40mm 렌즈 화각의 약 82.3%이다. [본문으로]
  6. Sf*2^(1/5) [본문으로]
  7. 라이카는 오스카 바르낙이 50mm 렌즈를 표준으로 채택한 이후 줄기차게 50mm를 표준으로 밀었으며, 브레송이라는 전설적인 사진가는 줄기차게 라이카의 50mm렌즈로 사진을 찍었다. 의미심장하게도, 라이카 애호가의 순혈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이단아나 다름없는 라이카 CL(=미놀타 CLE)은 40mm 렌즈를 채택하고 뷰파인더 프레임에 40mm 라인을 지원한다. 라이카 M마운트에 쓸 수 있는 라이카제 40mm 렌즈는 CL과 함께 출시된 40mm 렌즈 뿐이고, 그나마도 미놀타에서 설계한 것이나 다름없다. [본문으로]
  8. 펜탁스의 43리밋(Pentax FA 43mm f/1.9 Limited) 렌즈는 상당히 예외적인 편에 속한다. [본문으로]
  9. 시그마 삼식이는 이것을 노렸다고 보기 힘들다. 관심을 별로 못 받고는 있지만(…) 시그마의 포베온 센서는 공칭 1.7크롭 크기이고, 포베온 센서를 채택한 카메라에 삼식이를 장착하면 환산 51mm가 되기 때문이다. 소니의 30mm는 이 값을 노린 렌즈라 할 수 있다. APS-C용은 아니지만, 31리밋은 APS-C바디에 끼웠을 때 환산 45mm에 근접한다. 참고로 31mm는 Sf보다 반 스탑 짧다(=Sf*2(1/√2)). [본문으로]
  10. 20mm, 24mm, 28mm로 나가는 135포맷의 광각 렌즈는 단지 4의 배수로 깔끔하게 수열이 나온다는 이유로 그렇게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수학적 조화를 따진다면 21-25-28이 좀 더 근사한 배치다. 초점거리/Sf의 비율이 각각 1/2, 1/(1+3/4), 1/(1+2/4)에 가깝고, 1/(1+1/4)에 가까운 35mm로 매끄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11. 하지만 니콘은 35mm를 DX용으로 발매했다. [본문으로]
  12. APS-H 센서를 채택한 캐논 1D계열 바디(공칭 1.25크롭)나 라이카 M8 바디(공칭 1.25크롭)를 사용하는 소수의 사용자는 자신의 바디에 35/2렌즈를 장착해 환산 43.75mm의 화각을 만끽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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