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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그외

불완전한 기술 아련한 느낌

느린악장 2012. 12. 26. 22:36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술적인 불완전함이 아련한 느낌을 주는 사진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주변부 광량 저하(비네팅)가 심한 로모의 사진을 따라하는 '로모 효과' 같은 후보정 용어가 쓰이는 예[각주:1]를 우선 들 수 있다. 고전적인 발색을 보인다는 이유로 일부러 싱글 코팅 버전 렌즈를 따로 팔기도 하고[각주:2], 입체감 있는 묘사를 위해 일부러 몇몇 수차[각주:3]를 남겨놓은 채 설계하기도 한다. 라이카 렌즈는 '충실성(fidelity)'의 측면에서 최고의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각주:4] 라이카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이 있다[각주:5]. 카메라 바디의 해상력이나 고감도 노이즈를 논할 때 꽤 많은 사람이 논하는 '입자감'도 어느 정도는 여기에 들어갈 만하다[각주:6].



 내가 이 아련함의 가치를 얼마간이라도 인정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값싼 렌즈 붙박이 RF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주변 사람들에게 느낌이 좋다는 평을 받고(그 카메라로 주변 사람들을 찍어주었다), 휴대성 때문에 구입한 25mm f/2.8 렌즈의 광학적 성능이 별로 좋다고 하기 어려운데도[각주:7] 어느 정도 아련한 느낌의 사진을 그 렌즈로 뽑아내면서부터였다.


 나는 '감성은 얼어 죽을' 이라는 입장을 오랫동안 취해 왔다. 그래서 감성의 영역에 속하는 아련함이 내 눈 앞에 나타나자 나는 그 석연찮음을 해결해야 했고, 싱글코팅이라든가 하는 원인들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아련함이라는 게 있긴 있구나' 하는 정도의 인정은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가격대 성능비를 따질 때 성능에 감성 요소를 감안하지 않는다. 비싼 카메라는 충실성이 높아야 하며, 비싼 렌즈 역시 그러해야 한다. 나는 아련한 느낌으로 비싼 가격을 용서할 만큼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여기서 아련한 느낌에 대한 나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아련한 제품이 스펙 떨어지고 비싸다면[각주:8] 그것은 감성 팔아 눈탱이 치는 물건이다. 하지만 아련한 제품이 스펙 떨어지고 값싸다면 그것은 그런대로 괜찮은 물건이다. 어쩌면 나는 값싸다는 이유로 낮은 스펙을 참아 주고 그것을 구입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석


  1. 렌즈를 평가할 때 주변부 광량 저하는 부정적인 요소다. [본문으로]
  2. 보이그랜더(포익틀랜더) Nokton Classic 40mm f/1.4와 같은 렌즈가 그 예다. 싱글 코팅은 역광 상황 등에서는 불리할 수 있다. [본문으로]
  3. 수차는 해상력을 떨어뜨리고, 이미지의 정확성이 중요한 사진(문서 촬영 등)에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한다. [본문으로]
  4. "비싼 카메라는 왜 비싼가" 중에서 : 오히려 (나도 깜짝 놀란 사실이지만) 라이카 렌즈들은 구면 수차를 완전히 수정하지 않고 약간 남겨두어 해상력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3차원의 피사체를 2차원의 인화지에 재현하는 사진기 렌즈에서 해상력을 다소 희생시키더라도 보다 입체감 있는 묘사를 해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라이츠사는 사진을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렌즈의 해상력을 올리는 대신 콘트라스트를 올리는 방법을 더 선호한다. (주석에 인용된 부분은 맞춤법에 맞게 교정되었다) [본문으로]
  5. "비싼 카메라는 왜 비싼가" 중에서 : 결론적으로 라이츠 렌즈군은 구면 수차가 남아 있어 해상력은 생각처럼 높지는 않고 오히려 약간의 흐려짐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높은 콘트라스트의 윤곽선으로 보상하여 선명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진이 선명한 듯하면서도 부드럽게 묘사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면 라이카 렌즈의 맛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계룡산 도사급의 촌평이 뭔가 예언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본문으로]
  6. 비슷한 수준으로 해상력이 낮아도, 인터폴레이션한 느낌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입자처럼 뭉친 느낌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비슷한 수준으로 노이즈가 꼈어도, 해상력을 유지한 채 컬러 노이즈가 두드러지는 이미지가 차라리 낫다는 사람이 있고 해상력이 좀 죽더라도 컬러 노이즈 없이 굵은 입자가 튀는 이미지가 차라리 낫다는 사람이 있다. 선예도(sharpness)와 관련된 후보정을 하는 촬영자에게는 입자가 튀지 않는 이미지가 좋으며, 제조사 입장에서 카메라의 해상력을 유지하려면 입자가 튀지 않는 이미지 프로세싱을 택하는 쪽이 낫다. [본문으로]
  7. 25mm f/2.8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올릴 글에 서술한다. [본문으로]
  8. 비슷한 포지션의 경쟁 제품에 비해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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