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장비/그외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느린악장 2012. 12. 7. 00:49

 비슷한 제목의 노래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늘은 그 노래의 제목만을 따 와서 글을 쓰려고 한다.


 장비 동호회라고 할 만한 사이트에서 놀다 보면 그 사람의 장비 '이력서'를 볼 일이 생긴다. "이런저런 장비를 써봤노라"며 올린 추억의 글 혹은 리뷰 말이다. 그 사람이 걸어온 이야기가 들어 있어 대개는 고개가 끄덕여지나,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이력서를 마주하는 순간도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이력서는 대개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루프물>


 1) 장점 A1, A2때문에 A모델을 샀다. 쓰다 보니 단점 a1, a2가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내다 팔고 단점 a1, a2가 없는 B모델로 바꿨다.

 2) B모델을 쓰다 보니 단점 b1, b2가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내다 팔고 단점 b1, b2가 없는 C모델로 바꿨다.

 3) C모델을 쓰다 보니 별 단점은 없는데 내가 전에 쓰던 장점 A1, A2는 없더라. 결국 내다 팔고 다시 A모델을 샀다.


 <대리만족물>


 1) 장점 A1, A2때문에 A모델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A모델을 사기에는 돈이 없고, 비슷한 장점이 있는 B모델을 샀다.

 2) B모델을 쓰다 보니 단점 b1, b2가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내다 팔고 그런 단점이 없는 C모델로 바꿨다.

 3) C모델을 쓰다 보니 단점 c1, c2가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내다 팔고 그런 단점이 없는 D모델로 바꿨다.

 4) D모델을 쓰다 보니…

 N) 결국 N모델을 샀지만 N모델에는 장점 A1, A2가 없다.

 N+1) 아… A모델이 사고 싶다.


 어떤 말로 포장을 하든, 어떤 교훈을 얻었든, 결국은 돈 낭비이다. 루프물에서는 B→C→A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세차손을 지출해야 하고, 대리만족물에서는 B부터 N까지 발생한 시세차손을 다 합하면 A모델을 살 돈이 나왔을지도 모르니까.


 특정한 메리트에 '꽂히거나', 특정한 디메리트에 '학을 떼거나', 지금 있는 예산 범위에 맞추어 어떻게든 뭘 사려고 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조금이라도 돈 낭비를 줄이고 싶다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글쓴이가 이번에 장비를 고를 때 선택한 모델은 다음과 같다.


 1. 생각한 장비들의 조합을 모두 적는다. 세트에 포함될 모든 장비를 적는다. 그 장비들은 신품일 수도 있고 중고일 수도 있으며, 아주 값쌀수도 비쌀수도 있다. 예산 따위는 이 단계에서 생각하지 말고, 평소에 갖고 싶던 세트나 장터에서 놀 때 눈에 띄던 세트까지 모조리 적는다. 당신의 성에 차지 않던 값싼 세트도 적는다. 10~20개면 충분하다.




 2. 각 조합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2.1. 성능 평가


 1) '촬영 성능'을 위주로 선택한다고 할 때 어떤 모델을 우선시할지 고른다. 세트가 10개쯤 되거나 그보다 더 많다면 상위 절반에 속하는 모델을 고른다. 20개쯤 된다면 상위 1/4~1/3정도에 속하는 모델을 고른다.


 +요인 : 그립감이 좋다. 뷰파인더가 있다. AF가 신속 정확하다. 저장 속도가 빠르다. 조작성이 좋다(내가 자주 쓰는 기능이 쓰기 편한 자리에 있다. 외부버튼이나 다이얼로든, 인터페이스 상으로든) …


 이 조건에 탈락하는 카메라가 있다면, 그 카메라와 가격이 같거나 값싼 모델 중에서 '촬영 성능'에 부합하는 대안을 찾는다. 그 카메라보다 값싼 모델 중에 영 답이 안 보인다면 그것보다 조금만 더 비싼(10%이상 비싸지 않은) 모델로 대안을 삼을 수 있다.




 2) '결과물'을 위주로 선택한다고 할 때 어떤 모델을 우선시할지 고른다.


 +요인 : 기본 색감이 내 마음에 든다. JPG프로세싱이 우수하다. 색 재현성이 높다. 다이나믹 레인지가 넓다. 노이즈가 적다. 내가 찍을 환경에서 좋은 결과물을 내줄 것이다. 센서 판형이 크다. 렌즈 교환식 카메라일 경우 감당할 수 있는 예산으로 좋은 렌즈군을 갖출 수 있다 …


 이 조건에 탈락하는 카메라가 있다면, 1)과 같이 대안을 찾는다.




 3) '휴대성'을 위주로 선택한다고 할 때 어떤 모델을 우선시할지 고른다.


 +요인 : 작다. 가볍다. 파우치 등에 넣어 가방에 수납할 수 있다(카메라를 휴대하기 위해 별도의 가방을 꾸릴 필요가 없다). 렌즈 교환식의 경우 바디에 먼지떨이 기능이 있다(바디와 렌즈를 분리하여 휴대하기 편리해진다). 내가 자주 쓸 렌즈 중에 작고 가벼운 모델이 있다.


 이 조건에 탈락하는 카메라가 있다면, 1)과 같이 대안을 찾는다.




 2.2. 가격 평가


 (1) 액세서리 값을 포함해 최대로 쓸 수 있는 돈을 산출한다. 그 돈이 예산이 된다.


 (2) 대략 다음과 같이 x1.25로 구간을 끊고, 구간의 끝에 최대 예산을 둔다.

 구간의 예시 : 40 > 50 > 65 > 80 > 100 > 125 > 150 > 180 > 225 > 280 > 350 > 440 > 550 > 680 > 850 > 1060 …


 (3) 지금까지 생각한 모든 장비를 이 구간에 던져넣는다.


 (4) 각 구간에 있는 장비들 중 촬영 성능, 결과물, 휴대성의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장비를 하나씩 고른다. 많은 장비들이 2.1의 1) ~ 3)에 나왔던 장비와 겹치겠지만, 같은 가격대의 탁월한 경쟁자에 밀려난 장비들도 있을 것이다.




 2.3. 10점 만점으로 점수 매기기


 (1) 성능 평가에서는 최대 6점을 받을 수 있다.

 특정 장비가 우선시하는 모델에 선정되면 +1, 탈락 모델의 대안으로 그 특정 장비가 선정되면 +1.

 분야가 3개이므로 (1+1)x3=6.


 (2) 가격 평가에서는 최대 3점을 받을 수 있다.

 자기가 속한 구간대에서 가장 뛰어난 모델로 선정되면 +1.

 분야가 3개이므로 1x3=3.


 (3) 나머지 1점은 당신이 '땡기는' 물건에 던져준다.

 생각한 장비의 1/4 ~ 1/3정도에 던져주면 변별 요인이 될 것이다.


 (4) 당신이 훑어 보고 필요하다면 조정을 한다.

 호환 가능한 렌즈나 액세서리가 많다면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모델에 가산점을 주고, 지금 갖고 있는 장비와 상충한다면(컨셉이 유사해 메인과 서브로 공존할 수 없거나, 당신이 보유한 렌즈나 액세서리를 못 쓰는 제품이거나 등) 점수를 뺄 수도 있다. 그 범위는 1점이나 2점 정도가 될 것이다.




 3. 최종 평가


 10점 만점으로 매긴 점수로 순위를 매긴다.

 이 순위는 당신이 선호하는 순서라고 볼 수 있다.


 (1) 상위 25%정도에 해당하는 모델 중 예산 안쪽으로 들어오는 모델이 있다면 저울질을 해 보고 산다. 도저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2) 25~50%정도에 해당하는 모델 각각에 '어째서 이 모델이 최상위권에 못 들어갔는지', 즉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를 적는다. 바디 성능이 떨어지거나,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휴대성이 떨어지거나, 셋 다 그럭저럭 되는데 비슷한 가격대에 있는 막강한 경쟁자에 밀려서일 수도 있다. 그 이유를 당신이 납득할 수 있는 모델 중 예산 안쪽으로 들어오는 모델이 있다면 저울질을 해 보고 산다. 도저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3) 50~75%정도에 해당하는 모델 중 지금 메인으로 굴리다가 나중에 서브로 굴리기에 좋은 모델이 있는지를 본다. 결과물이 특출나게 좋거나, 휴대성이 특출나게 좋거나, 이도저도 안 되면 중고로 팔아치울 때 손해가 적고 팔기도 쉬운 모델이 있는지 본다. 예산 안쪽으로 들어오는(그리고 가급적 값싼) 모델이 있다면 저울질을 해 보고 산다. 한동안 쓰다가 팔거나 서브로 굴리면 될 것이다.


 (4) 그 밑으로는 사도 금방 후회할 것이다. 지금 지르지 말고 돈을 모으자.




 이 선택 모델은, 예산이 애매한 가격대에 걸쳐 있거나, 너무 규모가 유동적이어서 이것도 살 수 있고 저것도 살 수 있는데 뭘 사야 할 지 망설여지는 상황에서 특히 유효하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던(또는 성에 차지 않던) 저렴한 모델 중 내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모델이 나온다면 그 쪽으로 방향을 틀자. 가격 대비 마음에 드는 물건도 고를 수 있고, 추가적으로 렌즈나 액세서리 등을 구입할 수 있어 만족도도 올라간다. 혹시 정말 높은 가격대에 있던 모델 중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게 있다면, 다른 지출을 줄여서라도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사는 것이 좋다. 그 모델이 아마도 '당신의 한 방'일 테니까.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